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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늦어 발행하는 16호 노트입니다. 연휴 편안하게 보내고 계시는지요. 오늘 노트에서는, 휴일에 가볍게 사색해볼 만한 주제를 다뤄보려 합니다. 브랜드 컨설팅을 하다 보면, 클라이언트로부터 종종 듣게 되는 요청이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가 더 강해 보이게, 더 자신감 있어 보이게 잡아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 안에는 하나의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부족함은 감춰야 하고, 약점은 지워야 하며, 빈틈은 메워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정작 사람들이 오래 사랑하는 브랜드들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선명한 결핍들을 찾아볼 수 있거든요. 출신의 낙인을 평생 안고 살았던 창업자, 한때 짝퉁이라는 평을 들으며 시장에서 밀려났던 브랜드, 사양 산업이라 불리는 업 안에서 끝까지 남기를 선택한 회사 등등 말이죠. 이렇게 보면, 강한 브랜드들은 결핍이 없어 강해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결핍을 또렷이 가지고 있고, 감추지 않는 용기가 있기에 강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16호 노트에서는 결핍이 브랜드의 약점이 아니라 동력이 되는 순간들. 그리고 그 결핍이 소비자와 만나 어떻게 공명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Chapter B
Brokenness is the Beginning: 모든 서사는 결핍에서 시작된다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전 세계의 영웅 서사를 비교 연구한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합니다. 시대와 문화가 달라도, 위대한 영웅 이야기에는 공통된 구조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구조의 시작에는 언제나 결핍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을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이타카로 돌아가는 그 긴 여정 전체가, 고향을 잃었다는 결핍에서 시작됐지요. 아서왕은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자란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자라난 그 결핍이, 결국 바위에서 검을 뽑아 왕이 되는 서사의 동력이 됐습니다. 해리포터는 부모가 없는 아이였습니다. 부모의 부재가 해리포터를 호그와트로 이끌었고, 볼드모트와 맞서는 운명의 중심에 서게 했습니다. 캠벨은 결핍이 없으면 영웅 서사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사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떠날 이유가 없고, 도달할 곳이 없잖아요. 영웅이 영웅이 되는 이유는 처음부터 완벽하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무언가 결여된 채로 출발해서 그 결여를 채우려 끊임없이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브랜드도 다르지 않아요. 오래 사랑받는 브랜드들은 저마다 어떤 결핍을 안고 출발한 브랜드들이고, 그 결핍을 채우려 나아가는 과정은 브랜드의 서사가 되었습니다. 완전체로 태어난 브랜드는 만들 수 없는 이야기, 동력, 감동을 지니고서 말이지요. 어쩌면, 결핍을 가진 영웅의 이야기가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안에도 결핍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완벽한 신의 이야기에는 감탄할 수 있지만 공감하지는 못합니다. 결핍을 안고 길을 나선 영웅의 이야기에서야 우리는 자기 자신을 투영하고 “나도 저렇게 살고 있다”고 개입하게 됩니다.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완벽해 보이는 브랜드는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공명의 대상은 되기 어려워요. 소비자가 자기 자신을 투영할 틈이 없거든요. 반면 결핍을 안고 있는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말을 겁니다. “우리도 그렇다”고. 그리고 그 말이 닿는 순간, 같은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 그 브랜드에서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게 브랜드 로열티가 시작되는 지점이에요. 충성도는 완벽함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공명으로부터 빚어져 가슴 속에 번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명은 결핍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매끄러운 표면에서는 소리가 울리지 않듯, 결핍이 있어야 그 안에서 소리가 머물고 그 소리가 같은 진동을 가진 사람을 부르게 되는 겁니다. 챕터 C를 통해 이 공명을 만들어낸 다섯 브랜드의 이야기를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Chapter C
Carriers of their own Cracks: 결핍, 서사가 되다Case Study 01
샤넬(Chanel)
코코 샤넬(Coco Chanel)은 사생아였습니다. 열두 살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랐어요. 계급 시대의 프랑스에서, 그 출신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었습니다. 샤넬은 여성복을 바꾼 방식을 보면,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코르셋을 없앴고, 바지를 들였고, 장신구에서 귀족적 보석 대신 가짜 진주를 택했다는 건 단순한 디자인 선택 그 이상의 의미였을 겁니다. 오히려 “출신과 계급으로 결정되는 것들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에 가까웠죠. 샤넬이 평생 집착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유였고, 그 자유에 대한 집착은 자신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핍이 소비자와 공명했어요. 코르셋을 벗고 싶었던 여성들, 태어나면서 부여 받은 것들로 좌지우지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으로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샤넬에서 자기 자신을 본 거예요.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브랜드 안에 창업자의 결핍이 DNA처럼 새겨져 있기 때문이에요. 결핍이 없었다면 샤넬도 없었습니다. Case Study 02
리닝(Li-Ning)
리닝(李寧)은 1984년 LA 올림픽에서 메달 여섯 개를 따낸 체조 영웅의 이름이자, 그가 1990년에 만든 중국 최초의 스포츠웨어 브랜드 이름입니다. 리닝은 오랫동안 잔인한 평가에 시달리던 브랜드였습니다. 나이키(Nike) 짝퉁, 싸구려 중국제, 외국 브랜드와 경쟁할 수 없는 로컬 브랜드. 로고가 나이키의 스우시와 닮았다는 이유로 비웃음을 샀고, 중국 젊은이들조차 자기 나라 브랜드보다 나이키와 아디다스(Adidas)를 더 입고 싶어 했습니다. 심지어 리닝은 2010년대 들어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8000개 매장으로 무리하게 확장했다가 적자가 쌓였고, 사람들은 리닝을 “올드한 싸구려” 브랜드라며 외면하기 시작했고요. 그러던 2018년, 리닝은 뉴욕 패션위크에서 한자와 중국 전통 미학을 전면에 내세운 컬렉션을 발표합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지향하는 브랜드인지를 분명히 보여준 무대였습니다. 컬렉션의 옷들에는 가슴 한가운데 큼지막한 한자로 “中國李寧(중국 리닝)”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고, 색은 중국 국기의 빨강과 노랑이었습니다. “그래, 우리의 정체성은 중국에 있다. 우리는 중국 제품이다.” 리닝은 이렇게 생각의 방향을 뒤집었습니다. 디자인에 앞서, 태도로 정면돌파를 시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뜨거운 공감이 퍼지게 됩니다. 이건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리닝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리닝을 기다렸다고 말입니다. 짝퉁이라는 결핍을 안고 있던 브랜드가, 그 결핍을 감추는 대신 자기 정체성을 정면에 내세운 순간, 중국 젊은 세대가 거기서 자기 자신을 본 거예요. 서구 브랜드만이 멋지다고 배워온 세대가, “우리도 자랑스러울 수 있다”는 감각을 그 옷에서 발견한 거죠. 이 무대 이후 중국에서 ‘궈차오(国潮)’라는 새로운 흐름이 시작됐고, 리닝의 브랜드 가치는 66% 상승해 34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짝퉁이라는 결핍을 흉내가 아닌 것으로 위장하려 했다면 리닝은 영원히 거기에 머물러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그 결핍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우리는 중국이다”라고 당당히 내보이자, 비로소 결핍은 자산이 되었습니다. Case Study 03
신일전자(Shinil)
신일전자는 1959년 소형 모터 제조사로 시작해, 선풍기로 유명해진 회사입니다. 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브랜드이지만, 그 역사 자체가 곧 결핍이기도 했습니다. “낡은 브랜드”, “부모님 세대의 선풍기”라는 이미지가 늘 따라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먼저 신호를 보낸 것은 소비자들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써온 선풍기를 회사에 기증하거나, 수리해서 계속 쓰고 싶다는 요청들이 이어졌습니다. 신일전자는 그 신호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2022년, 1980년대 로고와 파란 날개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레트로 탁상 선풍기를 출시했습니다. 결과는 품절이었습니다. 2023년에는 1970년대 디자인을 복원한 두 번째 모델을, 2024년에는 세 번째 모델을 선보이며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신일전자가 한 일은 간단합니다. “올드하다”는 결핍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낡음 자체를 제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어린 시절 집 안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들, 효율과 스펙이 아니라 감각과 기억으로 물건을 고르고 싶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신일전자의 행보와 제품에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낡음이 결핍이 아니라 자산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Case Study 04
일광전구(ILKW)
1962년 대구 서문시장의 작은 전업사로 시작한 일광전구는, 60년 넘게 오직 백열전구만을 만들어온 회사입니다. 그렇게 한결같은 길을 걸어오던 중, 2014년 일광전구는 큰 전환점을 맞습니다. 정부가 전력 효율이 낮은 가정용 백열전구의 생산과 수입을 금지한 것입니다. 모든 전구 업체가 LED로 전환할 때, 일광전구는 백열전구를 놓지 않았습니다. 아날로그 감성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었고, 백열전구만의 따뜻한 빛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선택 속에도 어떻게 보면 결핍의 면면이 숨어 있습니다. 다만 이 결핍의 정체를 정확히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일광전구가 안고 있는 결핍은 단순히 “사양 산업에 속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더 본질적으로는 “우리는 효율적이지 않은 업을 다루고 있다”는 자기 감각에 가깝습니다. 백열전구는 전력 효율이 낮고, 수명이 짧고, 뜨겁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이미 더 나은 기술로 넘어갔죠. 그런데도 그 빛의 따뜻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아니,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그것이 일광전구가 가진 결핍의 코어입니다. 그리고 그 결핍에 정확히 공명하는 소비자들이 있었습니다. 필름 카메라, 종이책, 손편지처럼 효율적이지 않은 것을 사랑해본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더 나은 것으로 넘어갔는데도 옛 것을 쉽게 놓지 못하는 감각. 일광전구가 감추지 않고 감싸 안은 결핍은 바로 그 감각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이후 일광전구는 조명 기구 브랜드 ILKW로 피벗하며 시그니처 ‘스노우맨’ 시리즈를 출시했고, 뉴욕 현대미술관 MoMA 디자인 스토어에 입점했습니다. 사양 산업의 회사가 가장 감각적인 조명 브랜드 중 하나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Case Study 05
라오간마(Lao Gan Ma)
라오간마(老干妈)의 창업자 타오화비(陶华碧)는 1947년 중국 구이저우의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학교 문턱은 한 번도 밟지 못한 채 스무 살에 결혼했지만,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두 아이를 키워야 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쌀묵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녔고, 작은 노점에서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때 얻은 별명이 “학생들의 대모님”, 라오간마였습니다. 1996년, 그녀는 그 별명을 그대로 회사 이름으로 삼으며 창업을 하게 됩니다. 라벨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라오간마 병에는 창업자 본인의 얼굴 사진이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화장하지 않은, 세련되게 연출되지 않은 시골 아주머니의 얼굴 그대로 말입니다. 보통 브랜드라면 감추거나 다듬었을 법한 얼굴을, 라오간마는 정면에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운 겁니다. 이 라벨과 정체성은 고급 음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손맛을 원하는 사람들, 세련된 마케팅이 아니라 진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히 먹히게 됩니다. 시골 아주머니의 얼굴은 제품을 장식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브랜드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맛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 증명하는 표식이 된 겁니다. 지금 라오간마는 연 매출 6,600억 원, 80개국에 수출되는 브랜드가 되었고, “화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라오간마가 있다”는 말까지 듣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온, 글 모르는 여성의 얼굴이 이렇게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 라오간마는 결핍이 어디까지 자산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Chapter P
Pinpoint, then Pivot: 당신의 브랜드에는 어떤 결핍이 있나요다섯 브랜드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흐름이 보입니다. 브랜드가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 같은 결핍을 가진 소비자가 그 브랜드에서 자기 자신을 본다 → 브랜드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정체성과 감각이 머물게 된다 → 로열티가 생긴다. 이 흐름을 우리 브랜드에 적용해보려면 도구가 필요합니다. 머릿속에서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진단하는 것은 다르거든요. 두 단계로 점검해볼 수 있어요. 1단계. 우리는 지금 우리 브랜드의 결핍을 감추고 있는가, 받아들이고 있는가두 가지 진단 질문 판별하기 위한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노출 테스트 우리 브랜드의 결핍이 소비자 접점의 어디에 놓여 있는가. 브랜드가 결핍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것을 어디에 두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감추고 싶은 브랜드는 결핍을 소비자들이 눈치챌 수 없도록 최대한 숨기는 데에 집중합니다. 반대로 결핍을 자산으로 만든 브랜드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접점에 이를 드러냅니다. 라오간마는 시골 아주머니의 얼굴을 병 라벨 정면에 넣었습니다. 리닝은 한자를 옷의 가슴 한복판에 새겼습니다. 일광전구는 백열전구를 매대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놓았습니다. 결핍이 여전히 브랜드의 가장 안쪽에 숨어 있다면, 우리는 아직 그것을 자산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감추고 있는 단계일지도 모릅니다. 사라짐 테스트 이 결핍이 사라진다면, 우리 브랜드는 무엇이 되는가. 결핍을 감추는 브랜드에게 결핍의 소멸은 안도감일 뿐입니다. 하지만 결핍을 자산으로 만든 브랜드에게는 다릅니다. 결핍이 사라지는 순간, 정체성도 함께 사라집니다. 샤넬에서 출신의 결핍을 빼면 자유의 메시지가 희미해집니다. 일광전구에서 비효율을 빼면 따뜻함이 사라집니다. 신일전자에서 낡음을 빼면, 그 어떤 추억도 남지 않습니다. 우리 브랜드가 가진 결핍이 사라졌을 때 더 강해지는지, 아니면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잃게 되는지 한번 판단해보세요. 결핍이 사라졌을 때 브랜드가 더 강해진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극복했어야 했던 약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핍이 사라졌을 때 브랜드만의 정체성까지 함께 잃게 된다면, 그것은 감춰야 할 약점이 아니라 지켜야 할 자산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두 질문에 답하면 우리 브랜드가 지금 어느 상태에 있는지가 보입니다. 다음은 좌표를 찍는 단계예요. 2단계. 결핍 매트릭스로 우리 브랜드 진단하기2x2 결핍 분석 프레임 두 개의 축으로 모든 브랜드의 결핍을 분류할 수 있어요. 가로축 · 결핍의 출처 세로축 · 브랜드의 태도 이렇게 하면 네 개의 자리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룬 다섯 브랜드는 모두 ②와 ④의 영역에 속합니다. 반대로 ①과 ③은 결핍을 아직 자산으로 만들지 못한 브랜드들의 영역입니다. 결핍을 감춘 채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그 상태로 오래 살아남은 브랜드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우리 브랜드를 떠올려볼 차례입니다. 우리는 지금 결핍을 감추고 있나요, 아니면 자산으로 바꾸고 있나요. 외부의 압력을 받아 새로운 정체성으로 전환해야 할까요, 아니면 내부에 있던 결핍을 브랜드의 뿌리로 새겨 넣어야 할까요. ③에 있다면 ④로, ①에 있다면 ②로, 결핍을 감추는 쪽에서 결핍을 자산으로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 그것이 이 글이 제안하는 작업입니다. Epilogue
요즘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흥미롭게 시청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노트를 쓰는 내내 이 드라마를 종종 떠올렸었는데요, 그 이유는 주인공 황동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황동만은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지만 정작 데뷔는 못 한 채 형의 월세집에 얹혀 살고 있는 인물입니다. 같은 시기에 시작한 친구들은 다 자리를 잡았는데 그만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죠. 그런데 황동만은 그 무가치함을 감추지 않아요. 부정하지도,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내 인생이 왜 네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요?”라는 그의 대사가 그래서 특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자기 결핍까지가 자기 자신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거기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가 진상처럼 굴 때조차도 묘한 단단함이 엿보였고, 그 단단함을 알아본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거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핍을 외부의 기준으로 해명하려는 브랜드는 끝내 평가의 대상에 머물지만, 반대로 그 결핍을 자기 정체성 안으로 끌어안은 브랜드는, 약점처럼 보였던 이유를 존재의 이유로 끝내 바꾸게 되죠. 샤넬이, 리닝이, 라오간마가 그랬듯이요. 결핍을 부정하지 말고, 감추지도 말고, 그저 자기 것으로 감싸 안고 그 위에서 자기 언어로 살아가세요. 그 단단함이 결국 누군가에게 닿게 됩니다. 다음 호에서 만나요. Positively Yours, 이나연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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