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NOTE 20 July 10 2026 | 9 MIN RE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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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은 팬심을 얼마나 증명할 수 있을까? 많이 사는 사람이 곧 팬은 아니라는 슬픈 진실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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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클럽BCP 20호입니다. 오늘 노트는 이런 질문으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구독자님이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브랜드는, 정말 구독자님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인가요? 요즘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브랜드 팬덤 만들기이다 보니, 이 질문을 내내 하게 되더라구요. 저는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웠어요. 저에게 가장 많은 돈을 쓰게 만드는 브랜드와, 제가 팬이라고 부를 수 있는 브랜드는 분명히 다르거든요. 아마 구독자님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가장 자주 결제하는 브랜드를 한 번 떠올려 보시겠어요? 동시에 "나는 이 브랜드의 팬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브랜드도 떠올려보세요. 두 목록이 얼마나 겹치나요? (막상 적어보면, 생각보다 많이 겹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실꺼에요) 많은 브랜드들은 이 둘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곤 합니다. 매출 상위 20%를 뽑아 '로열 고객'이라고 부르고, 때로는 그들을 '팬'이라고까지 부르죠. 멤버십 등급을 만들고, 전용 혜택을 설계하고, "우리 팬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오독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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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사는 사람과 팬은 다른 존재입니다. |
많이 사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집 앞에 있어서, 할인이 좋아서, 다른 선택지를 찾기 귀찮아서, 이미 습관이 되어서. 이것은 행동충성도, 즉 behavioral loyalty에 가깝습니다. 행동은 반복되지만 감정은 깊어지지 않고, 구매는 계속되지만 관계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더 좋은 조건이 나타나면 떠나고, 떠날 때도 미련이 없습니다. 애초에 관계가 아니라 거래였으니까요. 팬은 조금 다릅니다. 팬은 꼭 많이 사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학생이라 돈이 없어서, 멀리 살아서, 그 카테고리를 자주 소비하지 않아서 구매 빈도는 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브랜드의 진짜 멋을 발견해주고, 위기에 처하면 지켜주고, 주변에 권하고, 때로는 비판하면서도 쉽게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태도충성도, 즉 attitudinal loyalty에 가깝습니다. 매출 데이터에는 잘 잡히지 않지만, 브랜드의 생명선을 쥐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이쪽일 때가 많습니다. 물론 운이 좋다면, 매출 상위 고객이 곧 우리의 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둘이 그렇게 쉽게 겹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둘을 같은 사람으로 보면, 전략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VVIP에게 혜택을 줍니다, 거래가 강화되겠죠. 반대로 혜택을 줄이면 이탈합니다. 그러면 "팬이 떠났다"고 진단하고는 다시 더 큰 혜택으로 붙잡으려 합니다. 이건 팬덤 전략이 아니에요, 그저 할인 경쟁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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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쓰는 사람을 팬이라고 부르는 착각도 있습니다. |
이건 제 이야기인데요. 저는 한 청소 서비스 앱을 6년째 쓰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된 앱인데, 써보니 실제로 편리한 기능들이 많았고 서비스도 안정적이더라구요. 신뢰도 갔고요. 하지만 누가 저에게 이 브랜드의 팬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더 좋은 앱이 나오면 언제든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6년이라는 시간이 쌓였지만, 그 시간 속에 쌓인 것은 애정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운거죠. 최근에 쓰기 시작한 쓰레기 수거 앱도 있는데요, 이 서비스는 실제로 제 생활을 바꿔주었어요. 버리기 힘들어 집 안에 쌓아두던 물건들을 쉽게 처리하게 되었고, 매일 밤 분리수거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요. 서비스 설계는 탁월하고, 편익도 아주 분명해서 주변에 소개도 꽤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브랜드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만족은 분명하지만, 아직 애정이라고 부르기에는 편익의 영역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찬가지로 6년째 쓰고 있는 레스토랑 큐레이션 앱이 있는데요, 이 앱은 제게 조금 다른 감정선을 가지게 합니다. 저는 이 앱을 예약이 편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식사 경험이란 이런 것"이라는 관점을 배우고 싶어서 쓰거든요. 멋진 식당을 고르는 기준, 음식을 대하는 태도, 한 끼의 시간을 바라보는 감각이 서비스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편한 예약 시스템을 이용한다는 느낌보다는, 멋진 미식 경험을 전파하고 싶은 멋진 세계관 안에 초대받는 느낌을 받고 있고요. 세 서비스 모두 훌륭합니다. 잘 만든 제품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제 생활을 더 편하게 만들어준 좋은 브랜드입니다. 그러니 차이는 품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청소 앱은 저에게 안정적인 습관이 되었고, 쓰레기 수거 앱은 분명한 편익이 되었으며, 레스토랑 큐레이션 앱은 하나의 관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팬심의 차이가 생깁니다. 습관은 오래 머물게 만들 수 있고, 편익은 다시 쓰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팬심은 조금 다른 층위에서 발생합니다. 이 브랜드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를 넘어, 이 브랜드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그 관점이 나의 감각과 얼마나 공명하는가. 팬은 바로 그 공명에서 생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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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성-편익-가치, 팬심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
마케팅에는 이 차이를 설명해주는 오래된 프레임이 하나 있습니다. 속성-편익-가치 사다리, 즉 Attribute-Benefit-Value Ladder입니다. 속성은 제품이 가진 것이고, 편익은 그 속성이 소비자에게 주는 이득이며, 가치는 그 편익이 소비자의 삶에서 갖는 의미입니다. 앞의 세 서비스를 떠올려보면, 차이가 어디서 갈렸는지 보일 겁니다. 편익에서 멈춘 브랜드와, 가치의 층까지 도달한 브랜드. 팬은 바로 이 가치의 층에서 발생합니다. 편익까지만 주는 브랜드에는, 아무리 오래 써도, 아무리 자주 써도, 팬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편익은 만족을 만들 수 있고, 재구매도 만들 수 있으며, 때로는 강한 습관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팬심은 그보다 조금 더 깊은 곳에서 생깁니다. 내가 이 브랜드를 쓰는 이유가 "편해서"를 넘어 "이 브랜드가 보는 세상에 동의해서"가 될 때, 관계는 거래의 바깥으로 조금씩 넘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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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팬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
팬이 '가치의 층위', 더 구체적으로는 '세계관 공명의 층위'에서 발생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러면, 그렇게 찾아와 준 팬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NPS를 보면 될까요? 재구매율을 보면 될까요? 멤버십 등급을 보면 될까요? 솔직히 말하면, 기존의 마케팅 지표로는 팬을 발라내기 어렵습니다. NPS는 "추천하시겠습니까"를 묻는데, 편익에 만족해서 추천하는 것과 팬이어서 추천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재구매율은 습관을 측정할 수 있지만 감정을 측정하지는 못합니다. 멤버십 등급은 매출을 정렬해낼 수는 있지만 팬심을 정렬하지는 못합니다. 흥미롭게도,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 문제를 풀어낸 사람이 있습니다. 션 엘리스(Sean Ellis)라는 실리콘밸리의 그로스 전문가입니다. Dropbox의 초기 성장을 이끌었고,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수백 개의 스타트업을 분석하면서 하나의 문제와 씨름했습니다. 우리 제품이 시장에 맞는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고객 만족도 조사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만족한다고 답해놓고 조용히 떠나는 사용자가 너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질문을 뒤집었습니다. 좋으냐고 묻는 대신, 잃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던거죠. |
"이 제품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면, 어떻게 느끼시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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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질문에 선택할 수 있는 응답지는 세 가지뿐입니다. |
1매우 실망할 것이다. 2다소 실망할 것이다. 3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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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이 강력한 이유는, 만족이 아니라 의존을 측정하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느냐"를 물으면 예의 바른 긍정이 돌아오지만, "잃으면 어떻겠느냐"를 물으면 진짜 감정이 드러납니다. 인간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더 강하게 반응하니까요. 엘리스는 이 심리를 정확히 겨냥한 겁니다. 그리고 그는 수백 개 기업의 데이터를 분석한 뒤, "매우 실망할 것이다"가 40% 이상이면 그 제품은 시장에 맞는 것이고, 그 미만이면 아무리 마케팅에 돈을 쏟아도 성장하기 어렵다는 임계점을 발견했습니다. 엘리스의 질문은 제품-시장 적합성을 판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 질문의 구조를 브랜드 팬덤에 대입하면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작동합니다. "제품"을 "브랜드"로만 바꾸면 됩니다. |
| "이 브랜드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면, 어떻게 느끼시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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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세 서비스에 이 질문을 던져보면, 답이 바로 갈립니다. 청소 앱을 못 쓰게 되면? 실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른 앱을 깔면 되니까요. 수거 앱을 못 쓰게 되면? 다소 실망할 것 같습니다. 불편해지니까요. 하지만 분리수거장에 다시 가면 그만이죠. 미식 큐레이션 앱을 못 쓰게 되면? 매우 실망할 것 같습니다. 좋은 식사를 발견하는 저만의 방식이 사라지는 거니까요. 저는 그래서 미식 큐레이션앱의 팬임을 이렇게 증명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해볼께요. NPS는 "추천하겠느냐"를 묻습니다. 이것은 사회적 행동의 의향을 묻는 질문입니다. 엘리스의 질문은 "잃으면 어떻겠느냐"를 묻습니다. 이것은 감정적 의존의 깊이를 파악하는 질문입니다. 팬심에 더 가까운 신호는 후자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CRM의 매출 데이터가 절대 잡아낼 수 없는 것을 잡아냅니다. 구매기여는 작지만 브랜드가 사라지면 매우 실망할 사람, 많이 구매하지만 브랜드가 사라진다고 해도 실망하지는 않을 사람. 전자가 팬이고 후자가 VVIP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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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고 싶지 않은 브랜드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볼게요. 그렇다면 우리가 잃고 싶지 않은 브랜드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기능이나 편의를 넘어서는 어떤 가치. 이 브랜드를 왜 좋아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왜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해주는 이유. 저는 그것을 브랜드의 '세계관'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세계관은 거창한 슬로건이 아닙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기여의 철학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이래야 한다고 믿고, 그래서 이렇게 만들고, 이렇게 소통한다"는 태도죠. 이 선언이 뚜렷한 브랜드에는 그 가치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입니다. 그 가치가 크고, 동시에 구체적이며 실질적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좋은 말로만 머무르지 않고, 제품의 선택과 서비스의 설계, 고객을 대하는 방식 안에서 반복될 때 세계관은 비로소 팬이 붙을 수 있는 형태를 갖습니다. 생각이 태도가 되고, 태도가 경험이 될 때, 사람들은 그 브랜드를 단순히 좋은 브랜드가 아니라 잃고 싶지 않은 브랜드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전 노트에서 다뤘던 '고집'을 여기서 다시 꺼내볼 수 있습니다. 고집은 세계관의 실행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태도는, 그 뒤에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이 이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라는 이유가 있을 때 비로소 팬의 토양이 됩니다. 세계관이 없는 고집은 완고함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완고함에는 공명이 따르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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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팬덤 전략의 첫 번째 질문은 "우리 VVIP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우리의 세계관은 무엇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
이 브랜드는 왜 세상에 존재하는가. 이 브랜드가 사라지면 세상에서 무엇이 함께 사라지는가. 이 브랜드가 끝까지 양보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그 고집의 뿌리에는 어떤 철학이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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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한 줄로 답할 수 있는 브랜드에는 팬이 있습니다. 답할 수 없는 브랜드에는 VVIP만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제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우리의 고객은 혜택 때문에 머물고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믿는 세계에 공명하고 있을까요? 영수증이 증명해주는 것은 어디까지일까요? |
Positively Yours, 이나연 드림 |
오늘 노트, 어떠셨어요? 한마디가 다음 호를 만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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